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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2024

과학적 성악 연구의 선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를 그린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는  1452년 4월 15일에 태어나서   1519년 5월 2일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으로 화가이면서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등 다방면에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시골 빈치라는 동네의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라스트 네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 이름  레오나르도에 빈치라는 동네 출신이라는 말이 뒤에 붙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워졌습니다.  덕분에 후에  그가 태어난 빈치라는 동네가 유명해 졌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성향을 지녀 수많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혼자 이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하나의 훌륭한 재능이 있었는데 그것은 음악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빈치는 다방면의 천재로 알려졌으나 음악가였다는 기록을 전혀 접할 수 없었던 저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음성을 지닌 훌륭한 성악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를 소원했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1481년에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갔는데 밀라노에 스포르차 가의 선조인 프란체스코의 기마상 제작 의뢰를 받았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음악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사람의 음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연구하기 위해 소리를 잘 내는 짐승들을 많이 해부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오리와 닭들이 이를 위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에 관한 저서들을 살펴보면 오늘날에 알려진 것처럼 사람에게 성대가 있어 성대가 울림으로 소리가 나는 단계까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성대가 있는 기도 끝에서 소리가 나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해 당시로는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람의 소리가 단순히  하나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최소한 세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악적 용어로   흉성  두성  가성 과 같은 분류를 그는 이미 하였고 이러한 소리들을 어떻게 내야 좋은 성악이 될 수 있는지를  그는 500년 전에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가 좋은 성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음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많은 목소리를 연구를 한 결과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의 저서를 보면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악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짐승들을 죽여가면서 까지 연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발전 시켰으며 이를 후대를 위해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이론은 현재 성악의 가장 기본이론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벨칸토 발성의 이론적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다빈치에 비해 저는 성악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닭이나 오리는 커녕 개구리도 잡은 일도 없는 참 게으르고 호기심도 없는 성악가가 아닌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자식도 없었으며 유산은 제자에게 물려주었는데 상당히 많은  미완성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생애 중에 엄청난 일을 했건만  세상을 떠나면서도 “좀 더시간을 아껴서 그림을 많이 그렸더라면” 하고 아쉬워 했다고 합니다.